제가 AIT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1991년도 3월 호 리더스다이제스트(영어판)를 통해서 였습니다. 1986년 2월 미국에서 산업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이래 줄곧 미국에 본사를 둔 한 의료기 제조회사의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저는 해외출장 길에 비행기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항에서 그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별 뜻 없이 구입한 그 조그마한 책에서 Fighting for George라는 기사가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조지아나라는 미국 소녀가 한 프랑스 의사로부터 청각을 치료받음으로써 자폐증을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 그 기사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저는 자폐증(autism)이란 단어조차 생소할 정도로 그 방면에 문외한이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까지만 해도 자폐증 환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저는 자폐증이 전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질환인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탐구를 계속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기사를 읽은 지 2년 여가 지난 1993년 가을, 서울로부터 분당으로 이사 온 저는 집 근처의 교회에서 한 특이한 소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일곱 살 소년은 헌칠한 키에 빼어난 용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말을 전혀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간혹 양손을 맹렬히 팔딱거리거나 이유 없이 귀를 막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증세가 바로 자폐증임을 알게 된 저는 예전에 읽었던 그 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2년 이상 지난 책을, 게다가 몇 년도 몇 월 호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상태에서 찾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 후반에서 1991년 초반 사이에 발행된 것이라는 희미한 기억만으로 청계천의 중고 서적센터들을 뒤지던 저는 천신만고 끝에 그 책을 찾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홍콩의 리더스다이제스트 아시아 사무국으로 전화를 건 저는 그곳 직원들의 호의로 조지아나를 치료한 프랑스 의사인 베라르 박사의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의 부모로부터 이미 동의를 받아 놓은 저는 베라르 박사에게 그 자폐 소년의 치료를 부탁할 계획이었습니다. 치료에 관한 세부사항들을 알기 위해 보낸 저의 편지에 대한 베라르 박사의 답장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저의 제자들이 세계 전역에 있으니 그들에게 치료를 부탁하십시오. 홍콩에도 두 명의 제자가 있으니 그들에게 문의하십시오.”

 베라르 박사가 알려준 주소로 연락을 취한 저는 홍콩의 그들로부터 AIT 비용이 HK$ 15,000(그 당시 환율로 약 150만원)이며 치료를 위해서는 2주 가량 홍콩에 머물러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값, 호텔 비 등의 제반 비용을 감안하면 막대한 지출이 예상되기는 했으나 그 당시의 저는 AIT만으로 자폐증이 치료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의 치료일정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저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선진국들에 이미 보급되어 있는 AIT가 아직 우리 나라에는 상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베라르 박사의 제자가 되어 우리 나라에 AIT를 보급하면 어떨까?’

 그 소년의 부모를 통해서 한국에도 많은 자폐 아동들이 있음을 들었기에 이 역시도 고려해 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의사나 장애아동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원칙적으로는 그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었으나 이웃 소년을 고치기 위해 애쓰는 저를 베라르 박사께서는 특별히 제자로 받아주셨습니다. 그에게서 AIT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저는 베라르 박사가 자신의 죽어가는 귀를 살리기 위해서 AIT를 고안했으며 그가 자폐증보다는 우울증과 학습장애의 치료에 더한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폐증은 매우 복잡한 질환으로서 AIT가 문제의 발단을 제거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 문제 자체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이 아님도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AIT 시술자 자격을 취득한 저는 1994년 8월 귀국 즉시 집에 AIT 장치(오디오키네트론)를 설치한 후 약 4개월간에 걸쳐 이웃의 자폐 소년을 포함한 수십 명의 어린이들에게 시범적으로 AIT를 행했습니다. 그 때 사용된 오디오키네트론은 제가 프랑스로부터 귀국할 당시에 휴대 반입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험도 부족했고 직장 업무도 병행해야 하는 등 여건이 좋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어린이들에게서 발음이 정확해지거나 소리에 대한 반응이 빨라지는 등의 뚜렷한 변화들이 관찰되었습니다. 제 이웃 소년의 경우에도 AIT 종료와 거의 동시에 귀를 막는 행동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표정도 매우 밝아져서 부모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 후 약 2년간 AIT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던 저는 10년 가량 몸담았던 직장을 1996년 말 경에 사직하였습니다. 귀한 어린이들을 다루는 중요한 일을 하는 데에 있어 다른 요소들로 인해 방해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자녀의 문제로 고통 받는 부모들을 돕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승일

 

청각통합훈련(AIT) 창시자인 베라르 박사와 함께, 그의 별장에서